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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임진왜란의 역사7) 임진왜란 교착상태, 협상 그리고 정유재란(칠천량해전)

by 히스토리초이 2024.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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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착상태와 협상

 

기세좋았던 왜군의 전진은 조선 의병, 이순신의 활약, 명나라 참전으로 교착상태로 이어지게 됩니다.

일본 내부에서도 진격과 전쟁을 계속 이끌어 나가는 것에 대해서 무리한 결정이라고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기에는 압도적으로 조선이 일본한테 지는것처럼 보였지만, 임진왜란 초반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왜군도 고전을 많이 한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러는 와중 명나라와 왜군은 협상을 펼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협상은 지지부진 하였고, 협상테이블에서 서로가 원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명나라가 원했던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죄와 조선에서 물러나는 것이였으며, 반대로 왜군이 바랬던것은 명나라 황녀를 일본 천황의 후궁으로 삼는것과 조선 8도 중 4도를 일본에 이양하는 것이였습니다.

 

지금들어도 말도 안되는 요구인데, 그 당시에는 정말로 용납이 안되었던 부분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특히 조선 8도중 4도를 일본에게 넘기는건 정말 어이가 없는 제안이였습니다.

협상 당시에도 일본군은 사기가 많이 저하되어 있었고, 협상을 하는 이유도 일본군이 더이상 전쟁을 이어 갈 수 없다고 판단해서, 협상을 한것이였기 떄문입니다.

 

약 6년간 이어진 협상은 결국엔 결렬되고, 정유재란의 전쟁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2. 정유재란 발발

1597년 8월 일본은 약 14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조선을 다시 침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라도 점령을 우선 목표로 세웠고 칠천량해전, 남원전투, 전주 함락 등 왜군이 승리를 거두다가 결국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왜군이 철수를 하게 된 전쟁입니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 초창기와는 다르게 육군과 수군을 함께 운영하는 전략으로 침략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7월 16일 칠천량해전이 벌어졌고 이 전투에서 조선 해군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됩니다.

 

칠천량 해전은 현재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 해협이며, 조선 수군이 왜군의 기습을 받아 많은 희생을 입은 전투입니다. 이로 인해 조선은 위기에 빠지게 되었고, 추후 조선 수군은 힘들 전투를 계속해서 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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