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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역사8) 이순신의 등장과 울산성 전투 그리고 일본의 퇴각 1. 이순신의 등장 정유재란에서 왜군의 공격 포인트는 육상 전력과 해상 전력이 함께 올라 전법이였습니다. 칠천량 해전에서 우리 수군이 왜군에게 처참히 패배하면서 우리나라 수군의 전력은 매우 약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이순신이였습니다. 칠천량 해전에서 판옥선 약 148척이 침몰되었고, 거북선도 다 잃었습니다. 남은 우리 수군의 전력은 판옥선 13척밖에 없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에서 판옥선 13척을 가지고 왜군 133척의 함대를 맞이하였습니다. 맞이한 장소는 현재 진도와 해남 사이의 바다였으며, 울돌목이라고 부를 곳이였습니다. 현재는 진도대교가 설치된 장소입니다. 울돌목은 물이 우는 관문 길목이라는 뜻으로 엄청난 조류를 보이는 바다였습니다. 이순신은 지리적 전략을.. 2024. 1. 25.
(임진왜란의 역사7) 임진왜란 교착상태, 협상 그리고 정유재란(칠천량해전) 1. 교착상태와 협상 기세좋았던 왜군의 전진은 조선 의병, 이순신의 활약, 명나라 참전으로 교착상태로 이어지게 됩니다. 일본 내부에서도 진격과 전쟁을 계속 이끌어 나가는 것에 대해서 무리한 결정이라고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기에는 압도적으로 조선이 일본한테 지는것처럼 보였지만, 임진왜란 초반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왜군도 고전을 많이 한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러는 와중 명나라와 왜군은 협상을 펼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협상은 지지부진 하였고, 협상테이블에서 서로가 원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명나라가 원했던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죄와 조선에서 물러나는 것이였으며, 반대로 왜군이 바랬던것은 명나라 황녀를 일본 천황의 후궁으로 삼는것과 조선 8도 중 4도를 .. 2024. 1. 19.
(임진왜란의 역사6) 조선 반격의 서막(3) 명나라의 임진왜란 참전으로 무엇이 바뀌었나? 1. 명나라의 참전 이유 사실 명나라가 임진왜란에 대해 참전한 이유에 대해서 정확한 사료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명나라가 임진왜란에 참전할 이유는 국제관계상, 만력제(황제)와 명나라 내부 사정상 참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조선의 북에서는 여진족이 조선을 괴롭혔고, 남쪽에서는 왜군이 조선인들을 괴롭혔습니다. 명나라에서 여진족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명나라의 국력이 쇠퇴하자 '누르하치'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부족을 통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누르하치가 조선을 도와주겠다고 제의까지 했었던 상황이였습니다. 자발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나섰지만 유성룡 등 많은 신하들이 반대하여, 조선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시 돌아와, 왜군은 조.. 2024. 1. 11.
(임진왜란의 역사5) 조선 반격의 서막(2) 행주대첩, 한산도대첩, 진주대첩 1. 한산도 대첩 임진왜란 초기 끊임 없이 왜군에 당하고 있었던 조선이 슬슬 반격을 시작합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전투 몇가지를 소개 하겠습니다. 우선 한산도 대첩입니다. 1592년 8월에 펼쳐진 전쟁입니다. 한산도는 오늘날로 치면 거제도와 통영 사이에 있는 바다(견내량)입니다. 한산도 대첩은 임진왜란에서 정말 중요한 전쟁이였습니다. 만약 한산도 대첩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은 진작 왜군에게 패배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을 통해 왜군의 보급을 끊어버리면서 고니시 유키나가가 평양성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한산이라는 영화를 보셨다면 대충 내용은 아실겁니다. 한산도 대첩이 펼쳐진 견내량은 길목이 좁고 조류의 흐름도 역류하면서 배가 움직이기 어려운 곳입니다.. 2024. 1. 3.
(임진왜란의 역사4) 조선 반격의 서막(1) (평양성 전투 1차 ~ 4차) 1. 평양성 전투 (1차~2차) (제1차 평양성 전투) 한양을 함락시키고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왜군의 제1 부대 1592년 7월 9일 개성을 함락시키고, 평양으로 향합니다. 선조는 평양은 지키려고 하였지만, 고니시 진격 소식에 의주로 몽진하였고 평양은 스스로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광해군이 남아 성을 정비하였고 백성들을 다독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광해군 행동에 백성들과 관군의 사기는 높아졌습니다. 7월 21일 고니시의 부대가 도착하였고, 제1차 평양성 전투가 발발합니다. 조선군은 막으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엔 평양도 함락당합니다. 전쟁 개전 60일만에 평양까지 뺏겨 버립니다. 1차 평양성 전투의 군사비교는 조선은 3,000명 ~ 4,000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왜군은 28,000명으로 추정하고 .. 2024. 1. 1.
(임진왜란의 역사3) 선조의 도망과 농민들의 반격 (곽재우, 조헌 등) 1. 선조의 도망 선조는 한양이 함락되기 4일전에 백성들 몰래 궁궐 뒷문으로 빠져나와 의주로 향했습니다. 이틀만에 개성에 도착하였으며, 평양이 함락되는 날 평양으로 급하게 도망갑니다. 하루에 약 40km씩 움직였다고 기록이 나와있으며 평양에서 의주까지 9일만에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하루에 40km 걷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물론 선조는 가마를 탔든, 말을 탔든 했겠지만 쉽지 않은 여정이였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렇지만 왜군을 만나는것보단 하루에 40km 이동이 훨신더 나은 선택이였을 것입니다. 선조의 도망은 왜군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였습니다. 일본에서 전쟁을 할 경우 왕이나 성주는 도망가는 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는것 같습니다. 당연히 조선은 .. 2023. 12. 28.
(임진왜란의 역사2) 조선 최고의 영웅이 패배하다. (신립과 이일장군) 1. 왜 조선은 막지 못하였는가 동래성 함락이후 일본은 물밀듯이 북쪽으로 향해 달렸습니다. 밀양, 김해, 청도 등은 맞써 저항하였으나 결국엔 패하고 맙니다. 왜군의 제1군은 동래-양산-청도-대구-선산-상주로 향하였으며 2군은 동래-언양-울산-경주-영천-군위-충주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3군은 김해-성주-추풍령-청주-경기도로 향하였습니다. 이런 와중 조정에서는 삼포왜란과 같이 왜구들이 해안가에서만 행패를 부리는 수준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 최고의 명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일장군을 남으로 파견하여 사태를 수습하고자 하였습니다. 우선, 조선의 가장 큰 잘못은 대응방법이 잘못되었던 점입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응방법 자체가 너무나도 단순하였습니다. 장군 한명을 달랑보내는 체제가 도저.. 2023. 12. 26.
(임진왜란의 역사1) 부산은 정발, 동래는 송상현 장군의 처절한 싸움 (임진왜란 배경) 1. 임진왜란은?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 까지 조선과 일본이 7년간 일어난 전쟁입니다. 조선과 일본 이외에 명나라까지 참전하여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바꾼 큰 전쟁이기도 하였습니다. 다들 아시다 시피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의 국력은 쇠퇴하였고, 이후 후금이 성장하여 청나라를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함으로써 도요토미 정권은 붕괴되었고, 에도 막부 시대가 왔습니다. 물론 제일 큰 피해는 조선이 보았습니다. 전쟁은 벌어진 장소가 가장 참혹합니다. 조선은 사망자도 어마어마 하였고, 왕이 사는 경복궁까지 불에 타면서 왕이 거처할 곳도 없었습니다. 임진왜란은 임진년에 왜국의 난리를 피웠다고 하여 생긴 이름입니다. 사실 임진왜란안에 1597년에 벌어진 정유재란도 함께 포함되.. 202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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